[국내] 너는 내 운명
- 작성자:관리자
- 등록일:22-01-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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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박중* 회원
동해를 만나게 된 건 제가 독도경비대장으로 인사이동되어 독도에 입도하면서입니다. 입도 첫날,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삽살개 한 마리와 마주쳤습니다. 동물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저는 ‘아~이 개가 삽살개구나’라고 생각하며 사진 한 장 남기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날, 독도의 첫 일출을 보기 위해 3인치 포로 향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뒤돌아보니 어제 마주친 그 삽살개와 친구 녀석이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녀석들은 8대 독도지킴이로 저보다 7개월 먼저 이곳에 들어왔고 바둑 삽살개 이름은 동해, 청 삽살개 이름은 바다였습니다. 가까이 가니 도망치기에 저는 뒤돌아서 다시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걷다 보니 어느새 3인치 포에 도착했고, 뒤이어 동해와 바다도 도착했습니다. ‘계속 나를 따라왔구나’라는 생각에 귀여워 사진을 또 찍었는데, 그 사진은 지금까지 큰 딸의 카카오톡 배경으로 남아있습니다.
며칠 지나니 녀석들은 저에 대한 경계가 풀렸는지 그때부터 다가가도 도망치질 않았고 제 뒤를 따랐습니다. 이른 새벽,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어김없이 두 녀석이 얼굴을 비추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뭐 줄 게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저는 어느 순간 생각날 때면 끼니를 챙겨주고, 별도로 간식을 준비해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독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야가 가릴까 앞머리도 묶어주고, 경찰 베레모를 씌어 사진도 찍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내가 개를 이렇게 좋아했던가?’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55일간의 독도 근무를 마치고 울릉도로 돌아가는 날, 8대 독도지킴이었던 동해와 바다도 지난 9개월간의 근무를 마치고 연구소로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차도, 사람도, 편의점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곳을 떠나면 마냥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결국 휴가 마지막 날, 녀석들을 보기 위해 연구소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독도에 있을 때 녀석들의 소식을 종종 가족에게 전해주었는데 가족의 눈에도 녀석들이 예뻐 보였나봅니다. 여동생들은 휴가까지 쓰는 열의를 보이며 저와 함께 연구소로 향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만난 녀석들은 너무 반가웠고, 가족들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마치 삽살개 팬미팅 현장 같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1시간이 지나갔고, 만남을 뒤로하고 떠나려는데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잠시 깊은 고민에 빠지다 이내 동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동해의 입양에 가족 모두가 협조적이었습니다. 섬 근무로 오랜 시간 부재일 수 밖에 없는 저를 위해 처가집에서 동해를 키워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동해와 저희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는 매월 셋째 주마다 동해를 데리고 캠핑을 갑니다. 매일 곁에 있어줄 수 없어 시간을 내어서라도 새로운 곳에 데려가고,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려고 합니다. 캠핑장에는 진도개, 허스키 등 유명한 중·대형견들이 많은데 그중 삽살개는 저희 동해가 유일합니다. 견주들과 이야기하다 동해가 8대 독도지킴이었다는 말을 하면 모두의 시선이 동해에게 집중됩니다. 삽살개이자 독도지킴이었던 동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동해와 가족이 된지 벌써 8개월이 흘렀는데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동물을 무서워하던 아내가 동해를 보기 위해 매주 처가집에 가는 것 입니다. 잘 지냈냐고 꼭 안아주고, 털도 빗겨주고, 애견샵에 수시로 들리고, 잘 보살펴 주기 위해 관련 유튜브 영상도 찾아봅니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변화를 준 동해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동해는 반려견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저에게 어느 날 우연히 찾아와 서서히 스며들어 가족이 되었습니다. 제게 먼저 다가와 준 것이 고맙고, 아내가 받아들일 수 있게 순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 또한 고맙습니다.
누군가는 저와 동해 이야기를 들으면 인연이 될 운명이었다고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은 1만 겁의 시간이 지나야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저희 둘은 무수한 시간을 지나 만나게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이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며, 동해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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